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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INTERVIEW (DGKR)




10년도 더 전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컬트에 갔던 나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꼬마 녀석이 컬트의 한쪽 출구로 들어와서 바로 Frontside Flip으로 계단 다운을 성공하고 바로 반대편 출구로 사라졌다고. 안대근은 이 구전설화로 세상에 알려졌다. 강산이 변한 만큼 한국 스케이트 신(scene)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안대근의 성실함은 묵묵하고 꾸준했다. 성실함으로 계속 계속 성장한 안대근이 Cross Pollination으로 돌아왔다. 기술과 스타일, 영상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다져진 안대근의 파트는 그가 꿈꿔왔던 이상향이 아니었을까. 


트래셔 단속반을 봤는가?
무섭다. 트래셔를 안 입어서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를 기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들었다. 
머리를 아예 길러 보니 묶고 다니는 게 편해져서 계속 기르게 됐다. 그러다 소아암 환자에게 모발 기부가 가능하다고 해서 더 길러보자, 마음먹게 되었다. 25cm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좀 더 길러야 한다. 파마나 염색을 하면 기부가 안 되기 때문에 생머리로 지낸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컬트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출구로 들어와서 몸도 안 풀고 계단에서 Frontside flip 다운을 성공하고 바로 집에 가버린 이유가 무엇인가?
오자마자 탄 것은 와전된 이야기다. 중3인가 고1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원주 로컬 형들하고 가끔 컬트에 갔었다. 바닥에서 프론사이드플립을 연습하던 시기였는데, 친구들하고 집에 가기 전에 ‘한 번만 뛰어봐야지’ 하고 시도한 게 운 좋게 바로 성공한 것이었다. 맞은편에 있던 다른 형들이 나의 랜딩을 봤는데, 왠지 그 형들이 무서워서 착지한 그 길로 바로 나가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확실히 남들과는 다른 기술들을 보여줬다. 대표적으로 바디배리얼 같은 기술은 당시에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바디배리얼이 대세다.
한창 기술을 연습할 때는 유튜브 같은 것도 없고, 비디오를 보기 힘들 때여서 그냥 장난치듯이 연습했다. 기술의 팁을 모르다 보니 그냥 되는 기술을 연습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때는 게임 오브 스케잇이 많이 열렸는데, 캐스퍼플립이나 바디베리얼 같은 기술은 사람들이 거의 하지 않았다. 좀 ‘치트키’ 같은 느낌이 있어서 게임 오브 스케잇때는 일부러 잘 하지 않았다. 


첫 스폰서는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나?
지금은 사라진 우후청산 샵에서 대회를 했었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뭔가에 홀린 듯이 모든 기술을 성공했다. 컬트 계단에서 킥플립만 차면 랜딩하고.. 뭐 그렇게 1등을 했더니, 우후청산 사장님한테 팀에 들어오라고 연락이 왔다. 동시에 위플런스(WYFLUNECE) 팀으로도 들어가게 되었다.



[ Photo by 이한민 ]


요즘 일과는 어떻게 되는가?
현재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5시 10분, 20분쯤 일어나서 출근한다. 6시부터 낮 1시까지 일하고, 집에서 1시간 정도 쉬다가 보드를 타러 나간다. 새벽에 일어나기 때문에 중간의 휴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전에 재미만으로 보드를 탔다면, 지금은 또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고 보드를 탄다. 


원래는 회사에 다녔던 것으로 아는데.
전에는 '몬타나'라는 페인트를 유통하고 판매하는 회사에서 일했다. 하다 보니 판매뿐만 아니라 마케팅도 하고 이벤트 기획도 하고 이것저것 많이 했다. 나름 열심히 했는데, 퇴근하면 왠지 모르게 우울하고 심적인 불안감이 커졌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게 됐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체력 관리를 따로 하는가?
하루에 보드를 2시간 이상 타지 않는다. 직장에 다닐 땐 보드 타는 시간이 없다 보니 한번 탈 때 최대한 많이 탔었는데, 지금은 거의 매일 타는 편이라 무리해서 타지 않으려고 한다. 새벽부터 일하다 보니, 생활 패턴도 아침형으로 바뀌었다. 일찍 퇴근해서 보드 타고, 집에 일찍 들어와서 잔다. 


맥주를 좋아하는 것으로 아는데.
맥주를 좋아해서 자주 마시지만, 평일에는 안 마시려 하고 마셔도 과음하지 않으려고 한다. 숙취나, 술 때문에 근육 문제가 생겨서 보드를 못 타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적당량만 마신다. ‘아 어제 술 마셔서 못 타겠다’ 이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고, 보드를 꾸준히 타고 싶다.


또래 친구들과는 다르게 밤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원주에 살 때는 서울도 잘 모르고 해서 서울 오면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었는데, 확실히 사람 많은 데서 노는 게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사람 많은 데서 있는 것조차 힘들다. 전날 엄청 술을 마시고 다음 날에도 아무렇지 않게 보드 타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또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다 보니, 해가 지면 집에 들어가는 게 자연스러워진 거 같다. 가끔은 너무 다른 걸 안 하다 보니, '이게 맞나..’ 싶은 생각도 종종 든다.


[ Mixtape 5 Tricks(2012) ]



서울 생활은 만족스러운가?

원주에서 혼자 탈 때는 동기부여가 없었지만, 서울에서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게 된다. 혼자 탈 때 생겼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스케이트보딩을 보는 눈이 좀 트인 것 같다.



현재 반스에서 월급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난 사실 돈을 받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에 부정적이었지만, 반스 팀으로 활동하며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알다시피 한국 스케이트 신(scene)은 산업의 규모부터 스케이터들의 실력까지 다른 나라와는 매우 다르다. 큰 회사가 어떤 프로젝트를 만들고 그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었을 때, 그로 인해 다음 프로젝트의 비용이 늘고, 스케이터가 가져갈 수 있는 이점도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회사들도 이것에 자극받아 한국 스케이트 신(scene)이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믹스테입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믹스테입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했는가?

믹스테입은 큰 의미로 시작한 것은 아니고, 지금의 인스타그램처럼 '남기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시작했다. 원주에선 주로 혼자 타는 경우가 많았는데, 혼자 타기만 하고 끝나는 것이 좀 아쉽기도 해서 영상으로 남겨서 공유하게 된 것이다. 찍은 것을 보고 팔 모양을 고친다거나, 자세를 고치기도 하고 도움이 많이 됐다. 이왕 찍는 거 이미지 컷도 넣고,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스케이트를 타는 것 외에도, 영상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생기고 발전한 것 같다.



필르머로도 많은 활동을 했지만, 요즈음은 조금 뜸해졌다.

스케이트 촬영으로 가볍게 시작했는데, 그게 일이 되다 보니까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영상을 직접 배우고 한 게 아니다 보니 큰 프로젝트에서 오는 커뮤니케이션이라던지, 자신의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 커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상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타던 친구들도 한창 찍었었는데, 이 친구들도 각자의 팀에 들어가다 보니, 함께 촬영하는 일도 적어지고, 나도 내 파트를 찍어야 하다 보니, 필르머가 아닌 스케이터로서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을 찍고, 친구들의 미니파트도 만들어주고 싶다.



[ Home Park: Hyunjun Koo & Friends(2017) ]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기술들은 항상 새롭고, 놀라운 기술들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은 비디오로 남기기 전에 SNS에 올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지만, 나는 먼저 남긴 후에 촬영하면 심적으로 편해진다. 그리고 그 기술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더 어렵거나 그 위 단계의 기술을 시도하라고 얘기해줘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그 덕에 얻게 된 기술들이나 비디오로 남긴 기술들도 꽤 있다. 


어떤 계기로 스케이팅 스타일이 변하게 되었는가?
한때는 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했다. 그러다 스케이트보딩이 어렵고 벅차게 느껴지는 시기가 찾아왔고, 크루징에 맛을 들이게 되었다. 마침 그 슬럼프가 왔을 때 레오 볼스(Leo Valls)를 만나 “크루징 하는 것도 기술이다.”라고 한 얘기를 듣고, 스케이트보딩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게 되었다.

자기만의 것을 가진 스케이터들. 예를 들면, 코이치로 우에하라(Koichiro Uehara)처럼 자신만의 색으로 세계적으로 영향을 주는 스케이터들에게 많은 영향을(자극을) 받았다. 보고 따라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만든다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변하고 싶은 스케이터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스케이트보딩은 굉장히 예술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본기가 바탕이 돼야 한다.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기술들은 바뀌지만, 기본기는 그대로다. 기본기만 되어 있다면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 street (2014) ]



이번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계속 계속(2017) 전부터 이한민과 촬영을 하고 싶었다. 계속 계속이 끝나고 반스에서 이한민과 촬영을 제안하였고 계약서를 쓰기 전에 먼저 촬영을 시작했다. 계속 계속이 반스 팀 위주의 비디오였다면, 이번 비디오는 온전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반스에서 기회를 줬다. 그래서 이한민이 영상을 맡고, 음악은 DTSQ의 김수현, 아트워크는 고아림과 김준영이 도와주게 되었다. 단순히 스케이트보드 기술만을 담은 비디오가 아니라, 스케이트보드로 모인 또래 친구들이 만드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베릭스(Berrics)에도 소개되었던데 기분이 어땠는가?

마침 올라온 날이 월급날이라 자축의 의미로 맛있는 걸 먹었다. 많은 분이 프렌즈파트로 참여하고 도와준 비디오가 올라가서 더 기뻤다. 앞으로도 국내의 많은 스케이터의 창작물이 해외에 소개되고, 앞으로도 더 다양하고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Cross Pollination은 본인이 추구한 스케이팅의 완성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브랜드 영상의 주인공으로 부담도 컸을 텐데.

브랜드의 영상이 아니었으면, 아마 미니 파트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해낼 수 있을까’, '얼마나 후회 없이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만 가끔 했을 뿐, 촬영에 대한 부담은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오프라인 시사회에 대한 부담이 더 컸다.


전에는 기술에 성공하지 못했을 때 실패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좀 있었는데, 지금은 이번에 부족한 것은 다음에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타고 있다. 지금 상황에만 목매는 것보다는 다음에 보완하고 완성하면 된다. 그런 부분에서 이한민의 도움이 컸다.




그러고 보니 먼 스팟에 가더라도 본인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타지 않는다고 들었다.

몸 상태가 안 좋을 때 찍으면, 어차피 맘에 들게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림이 예쁘지 않게 나올 것 같으면 아예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할 수 없을 때까지 시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이번 프로젝트를 조금 다른 생각으로 임했다. 억지로 하다 다치면 그건 혼자 다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프로젝트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트를 촬영하며 성장했다고 느끼는가?

찍고 싶었던 기술을 촬영한 것도 좋았고, 생각지 못한 새로운 기술들을 얻은 것도 좋았다.



성장의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같이 타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다. 스타일이 다르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스타일이 비슷하면 큰 동기부여가 된다. 다들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자기만의 색이 있기 때문에 같이 타며 많은 것을 배웠다. 김준영은 어디선가 어떤 기술을 보고 와서 같이 시도하자고 하고, 기술에 접근하는 방식도 일반적이지 않다. 구현준은 항상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자기만의 스타일로 만든다. 그리고 힘들거나 지칠 때 고아림은 항상 옆에서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넥스트 레벨을 기대해도 좋은가?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하고 싶은 기술들은 계속 생기기 때문에 꾸준하게 남기고 싶다.



스케이터에게 비디오 파트나 촬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스케이트보드 비디오 파트를 찍는 것은 스케이터의 근본적인 자세라고 생각한다. 파트를 통해 뭔가를 배워서 남기고,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 Cross Pollination(2018) ]

점점 나이를 먹으며 드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는가?
언젠가는 나도 생각한 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시기가 오거나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약간의 걱정도 있지만, 현재 생활에는 만족스럽고 감사하다. 원래는 올해나 내년쯤엔 직장에 다니면서 보드를 탈 것으로 생각했다. 큰 프로젝트를 맡아서 그 계획은 좀 미뤄졌지만, 반스에서 준 기회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됐다. 이제 큰 프로젝트도 끝났으니,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뜬금없지만, 스케이트 파크 이용객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로컬에게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왁스를 바른다거나, 박스에 앉아있다거나, 순서에 대한 것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프로젝트 제안부터 마무리까지 힘 써주신 반스 코리아, 누구보다 뜨거웠던 핫미네이터 한민형과 그림 그려준 아림, 준영, 흔쾌히 음악 만들어준 수현(DTSQ), 프렌즈 파트에 함께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 든든하게 지원해주시는 힙스 스케이트보드, 세이버 스케이트보드샵, 그리고 항상 응원해주시는 데일리 그라인드와 제 주변 모든 분, 형, 누나, 동생,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글 / 인터뷰어: 조광훈 (@kwangstavision)
사진: 이한민 (@hotminator)